서울의 곳곳에는 우리나라의 옛 정취와 문화를 느끼고 고도의 과학적 건축기술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궁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의 살림을 맡아서 하는 서울시청, 주요 광장인 광화문, 아름다운 거리로 나들이코스로 인기가 많은 북촌, 대학로, 많은 직장인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종로거리 근처에는 서울의 5대 궁이라 불리는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이 위치해있다. 서울 근처 안양에 거주하고 있는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올 때까지 궁궐에 대해서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냥 옛날부터 있던 궁궐. 그 뿐이었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때에는 이과였으니 성적을 위해서 나마라도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 나의 역사공부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가 마지막이었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공부는 그것으로 끝이 날 것만 같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 ‘궁중문화축전’이라는 궁궐에서 열리는 문화축제가 있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이었던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경복궁의 근정전과 경회루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밝은 날에 오지도 않았던 곳이었는데, 해가 진 야간에 혼자 남아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나가있는 정적만이 흐르는 궁궐 속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면 조용히 거닐 기도 하였는데, 궁궐 밖의 현대식 건물들이 비추는 빛 사이로 은은하게, 그렇지만 웅장하게 서있는 궁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궁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후로 경복궁과 창경궁, 종묘나 경희궁 등 다양한 궁들을 방문하였었지만 유독 창덕궁은 볼 기회가 없었다. 7월 2일 비가 내릴 듯 말 듯 우중충한 여름날.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이는 창덕궁을 이번기회에 견학하게 되었다. 창덕궁은 우리나라의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가장 크고 잘 알려진 궁궐은 경복궁이니 경복궁이 마땅히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가지며 답사를 시작하였다.
창덕궁에 들어가는 입구인 돈화문은 경복궁의 광화문과 비교하였을 때 그 규모가 작았지만 궁으로써의 존재감은 잃지 않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 자주 들렸던 경복궁은 궁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때에도 권위와 위압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광화문광장을 지나 광화문이라는 큰 문을 지나고 흥례문, 근정문을 지나서 만나는 근정전 격식과 임금이라는 지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경복궁에서 동쪽으로 북촌을 건너면 볼 수 있는 창덕궁은, 다른 궁들과는 달리 왕이 정사를 살피며 쉴 수 도 있는 공간으로, 주변의 자연환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경복궁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병풍처럼 이용했다고 하면 창덕궁은 주변의 산을 온연히 끌어안았다고 표현해야 할까. 돈화문을 들어서고, 기대했던 장엄한 건물이 아닌 또 한 번 꺾이는 길이 나있었고, 그 대로변에서 또 꺾어야 비로소 창덕궁의 주 건물인 인정전을 만날 수 있었다. 인정전 내부에는 경복궁이나 여타 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샹들리에나 커튼 등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정전을 보고 나오는 길에 선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업무를 보던 곳으로 다른 궁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 선정문까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되어 이러한 특징이 나타났다고 한다. 선정전과 대조전을 구경한 뒤에 희정당 쪽으로 나오는 와중에, 희정당의 입구가 좀 낯설었다. 마치 유명호텔의 현관같아 보였는데, 그 까닭을 보아하니 궁을 근대까지 계속 사용하게 되면서 가마에서 발전된 자동차라는 신문물을 사용하게 되고, 이를 순종황제가 이용하게 되었다. 궁궐의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옛 양식 그대로의 궁궐내부에 자동차를 위한 현관이 마련된 것이었다. 이 때 순종황제가 사용한 자동차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이렇듯 기술이 발전하고 개화를 하며 유리창과 전등, 화장실까지 설치가 되면서 옛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이 독특한 건축이 나오게 되는 발판이라 생각하며 매우 재미있었다.
12시가 되고 후원입장시간이 되었을 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였는데, 후원으로 들어가는 나무로 둘러 쌓인 언덕에서 듣는 빗소리도 아름다웠다. 조선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예로부터 앞마당은 비워두고 뒤쪽에 정원을 조성하였다. 창덕궁 후원은 뒤에 있어서 후원(後苑)이라는 명칭 외에도, 깊숙이 있어서 내원(內苑), 아무나 들어올 수 없어서 금원(禁苑), 북쪽 높이 있어서 북원(北苑), 임금만 들어갈 수 있어서 향림원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때 후원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비원을 두었고, ‘비밀스런 정원’ 이라는 의미로 비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설명을 듣자니 후원이라는 명칭이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등장하고 맞는 말이라고 하셨다. 창덕궁의 전각이 4만 평, 후원은 9만 평, 축구장은 약 2000평이므로, 후원의 넓이는 축구장의 약 45배 정도이니 그 크기가 더욱 실감 할 수 있었다. 창덕궁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후원이었다고 하니 그 크기도 크기거니와 후원의 아름다운 모습이 기대가 되었다. 후원은 휴식처이자 정원이었지만 왕이 주관하는 야외행사나 과거시험, 왕과 왕세자가 학문을 연마하고 시를 읊었던 장소이자 군사훈련까지 진행하였다.
후원관람코스의 가장 첫 번째는 부용지였다. 부용지는 연못으로, 가운데의 둥근 섬모양의 화단과, 네모난 연못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 천원지방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 부용지는 정조임금과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부용지에 두 다리를 내밀고 있는 정자는 부용정이며, 가장 높은 곳에 위풍당당하게 위치한 건물은 주합루이다. 주합루는 ‘우주와 하나가 된다.’라는 의미로, 그 당시 1층은 각(閣), 2층은 루(樓)라고 한다. 그래서 1층은 규장각, 2층은 주합루라고 불린다. 이 중 규장각은 정조가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장소로, 집현전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주합루로 오르기 위해서는 문을 하나 통과해야 했는데, 이것이 어수(魚水)문이다. 어수문은 삼국지의 수어지교(水魚之交)에서 따온 말로, 물과 물고기의 관계를 의미한다.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왕과 신하들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한다. 어수문의 큰 문 양옆에는 신하들이 드나드는 작은 문이 있는데, 과장해서 창문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그 당시 평균키가 161cm였다고 하니, ‘임금을 알현하러 가는 길에 겸손의 미를 가져라.’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왕이 신하들을 아낀다면서, 결국 머리를 조아리라는 권위적인 모습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왕이 신하를 생각하는 마음조차도 큰 배려와 신하에게는 기쁨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수문의 맞은편 부용지의 연못 테두리에는 팔딱 뛰어오르게 양각으로 새겨진 물고기 한 마리를 볼 수 있는데,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라 어수문을 지나 규장각까지 오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연못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는 신하, 그 신하를 품은 연못은 임금, 임금은 땅을 상징하고 그 안의 둥근 하늘을 아우른다는 의미도 내포되어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규장각, 주합루 옆에 있는 기다란 건물은 서향각이다. 풀이하면 ‘책의 향기가 나는 곳’이라는 의미로 규장각의 책들을 햇볕이나 바람이 좋은 날 말리는 포쇄(曝曬)를 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연못에 두 다리를 내민 정자는 부용정으로, 부용(芙蓉)이란 말이 활짝 핀 연못이란 의미를 가진 만큼 위에서 보면 활짝 핀 연못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북쪽으로 내밀은 다리가 한단을 높였는데, 이곳이 임금의 자리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곳에서 정조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낚시를 즐기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에는 부용지에 배가 있었다고 한다. 시를 읊다가 시간 안에 신하들이 대지를 못하면 가운데 둥근 섬에 유배를 보내기도 하였다고 하니 재밌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임금이 신하를 유배를 보내는 것이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손이 벌벌 떨리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부용지의 오른편에는 영화당과 춘당대가 있다. 이곳은 임금이 참관하는 가운데 과거를 치룬 장소로써, 영화당이라는 글씨는 정조의 친필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장원급제를 해서 어사또가 된 인물 중 고전에 등장하는 이도령, 즉 이몽룡이 있으나, 춘향전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므로 소설 속에 등장 할 만큼 등용문으로써 꿈의 장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당은 신발을 벗으면 실제로 들어가 볼 수도 있으니 뭐든 직접 해보지 않으면 성에 안차는 한국인의 관람코스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길을 옮기다 보면 불로문(不老門)을 만나게 된다. 경복궁을 가다 보면 경복궁역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문을 실제로 보니 반가웠다. 이름의 뜻은 늙지 않는 문이라는 뜻으로, 옛날 왕의 평균수명이 46세 정도이다 보니, 우리의 임금이 오래오래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을 지나면 늙지 않는다고 하지만, 불로문의 상단부분에 금이 가 있었고, 보수작업을 앞두고 있어서 지나보지는 못하였다. 불로문의 상단부분은 둥글고, 하단은 각진 것을 보아 이것 또한 천원지방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불로문의 측면에는 문을 설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나무로 만든 문을 설치해서 사용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애연정은 숙종임금이 연꽃을 굉장히 좋아해서 연꽃을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지어졌고, 숙종임금이 연꽃을 좋아한 이유는 더러운 물에서도 깨끗하지도 않은 물에서 살면서도 깨끗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 해서 군자의 기개와 같다고 해서 군자의 꽃이라고 불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기둥과 기둥사이에 굉장히 예쁜 문양이 있는데, 정자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예쁘지만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경치도 기둥과 기둥들이 액자의 역할을 해주어 굉장히 아름답다고 한다. 다만 입장이 불가능하여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반도지로, 연못이 한반도의 모양을 본뜬 모양이라고 한다. 원래는 두 네모꼴과 둥근 한 개의 연못으로 나뉘어졌다가 일제강점기에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관람정은 특이하게 현판이 나뭇잎 모양이었다. 이 나뭇잎은 파초잎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왜 파초잎을 본떠 만들었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다른 정자들과는 달리 이곳 후원의 정자들은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으며, 특히 이 관람정은 부채꼴모양으로, 현판의 디자인 또한 여타 정자들과는 달라 색다른 의미를 가지고 짓진 않았나 짐작해본다. 관람정의 맞은편의 높은 자리에 위치한 정자인 승재정은, 그곳에서 위에서 내려 보는 경치는 굉장히 빼어났다.
존덕정의 모습을 보면 보통의 정자처럼 사각, 혹은 팔각인데 육각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지붕이 겹 지붕으로 되어있고, 기둥도 안쪽에는 굵은 기둥, 바깥에는 가는 기둥이 3개가 위치하여 겹 기둥을 하고 있는 형태였다. 천장에는 그림이 있었다. 보통 정자에는 연꽃 혹은 아무 그림도 없는데, 이곳에는 용이 그려져 있고 그 그림의 주인공이 황룡과 청룡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인 것으로 보아 격이 높은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었다. 정조가 직접 지은 호인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며, ‘만개의 개울에도 달이 모두 비추고, 하늘에 떠있는 달은 하나’라는 의미가 보여주듯이, 만백성을 아우르겠다는 정조임금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달빛을 비추는 것처럼 감히 나에게 도전하는 것은 용납지 않겠다는 개혁의지도 엿볼 수 있었다.
그 옆에 폄우사는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왕세자들이 독서채로 이용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팔자걸음을 연습한 것처럼 보이는 돌들도 설치되어 있었다. 폄우(砭愚)란 말의 뜻이 ‘어리석음을 깨우친다.’인 만큼, 독서채로도 이용하고 임금으로서의 예의범절을 공부해보는 장소라고 한다. 팔자걸음은 그저 양반이 무의식적으로 걷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돌을 설치해서 공부를 할 정도인 것은 미처 몰랐다. 실내부로 들어가기에는 단(壇)이 너무 높았는데, 이것도 무언가 예의범절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효명세자가 아버지에게 진작례를 올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연경당으로 들어서기 전에 궁에서 살고 있는 너구리를 볼 수 있었다. 사진은 미처 찍지 못하였지만,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호들갑에 반응하지 않으며 조용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가는 것을 보며 ‘왕가에 있는 동물도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연경단은 단청을 하지 않아서 수수한 느낌이 들지만 사대부 살림집의 제도를 본떠 옹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연경당에서 특별했던 것은 바로 선향재였는데, 책을 보관해두는 서고이자 집안을 드나드는 객들에게 잠시 쉬라고 내어주는 공간이라고 한다. 이 선향재가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붉은 벽돌을 쌓아 지은 청나라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서쪽을 바라보도록 설치되어있고, 지붕이 구리로 되어있으며, 차양을 도르래로 조절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장락문의 한편에는 석분이 위치하였는데. 이러한 괴석들을 창덕궁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달에 있는 항아전설과 관련이 있는 두꺼비가 돌 오른쪽에 양각이 되어 있었다.
창덕궁에는 왕비가 직접 누에를 기른 이른바, 침전을 하기 위하여 뽕나무를 심었는데, 농업을 장려하고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는 침전례를 하며 백성들의 풍요를 기원하였다. 그 중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뽕나무 중 가장 오래된 뽕나무는 400년이 넘은 뽕나무였다. 이렇듯 창덕궁에는 160여종 70여종 이상이 300여년이 넘었는데, 그 중 4종류의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바로 이 뽕나무와 더불어, 400년된 돈화문 왼쪽에 있는 혜화나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 위치하는 600년 된 다래나무, 그리고 750년 된 향나무가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수 많은 천연기념물과 자연의 주인인 동물, 곤충, 식물들이 함께 거주하며 지내고 있었다.
후원을 모두 둘러본 다음에는 나와서 궐내각사와 낙선재를 둘러보았다. 궐 내각사는 왕실과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 내에 설치가 되어있는 것을 말하며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굉장히 복잡하게 구성이 되어있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차분하고 정적인 궁궐의 주요 건물들도 좋았지만, 궁궐을 돌아가게 하는 실질적인 공간속에서 그 시절의 활기도 느껴지고 민심이 느껴지는 마을 같은 느낌도 들어서 좋았다. 궐 내각사에서 옛날 전주의 경기전에서 보았던 태조어진과 같이, 왕의 신주와 어진을 모시던 선원전을 볼 수 있었다. 어진은 마치 살아있는 왕과 같은 존재로, 실제 임금과 다름없이 예의를 갖추고 의장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왕권을 다지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낙선재에서는 창덕궁의 한편에 위치하여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창경궁의 영역이었지만, 현재는 창덕궁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연경당과 마찬가지로 단청을 칠하지 않아 수수해보이고, 사대부의 집을 닮아있었다. 낙선재는 헌종이 정조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건립한 곳으로, 규장각처럼 낙선재에도 많은 서적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이후에 후궁의 거처로써의 역할을 하며 후궁의 권위를 세우고 왕권의 정통성을 계승하고자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가슴 한켠에 가장 와닿은 것은 바로 황실 여인들의 최후를 맞이한 곳이라는 점이다. 마지막 황실가족인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낙선재와 수강재에 머물면서 지내다가 1989년 돌아가셨다고 한다. 해방이 되고도 20년이 지난 63년에야 돌아온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귀국 후에도 지병으로 고생을 하며 살아온 곳에서, 그들의 삶을 그린 소설 ‘덕혜옹주’의 슬픈 모습이 그려지면서 왠지 모르게 애처롭게 느껴졌다.
궁을 모두 돌아보는 데에는 약 3시간정도가 소요되었다. 낭만을 가지고 있고, 근현대사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자연을 품고 있는 창덕궁을 둘러보며, 크고, 장엄하고, 압도적인 경복궁도 좋지만, 은은하고 낭만적인 창덕궁 그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사실 이런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하고, 역사를 살펴보고 상상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이자 유산이다. 그리고 이러한 멋진 유산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 중 하나라는 서울에서 온전하게 지켜져 오고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언제든지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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