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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

문화/독서

by 김도훈 2019. 9. 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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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채사장
한빛비즈 
2017.01.17
페이지 376
ISBN 9788994120966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편협한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며, 개인의 세계관의 표현이다. 자신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는 말은 자신은 어떠한 세계관도 갖지 않는다는 말처럼 불가능한 이야기다

 

논의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입장으로서, 우리는 이를 ‘정치적 보수’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입장으로서, 우리는 이를 ‘정치적 진보’라고 부른다.

자신을 보수 혹은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답에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 ‘진보’의 개념을 각각 ‘안정’, ‘변화 추구’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막연하며 주관적인 답변이다.

 

90년대 말 한국의 경제 위기 당시에 두 모녀가 카드 빚에 시달리다가 동반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다. 딸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장성한 성인이었다. 카드 사용 내역에는 생필품뿐만이 아니라 기호품이나 사치품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해 두 신문이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을 붙였다. A신문 “비정한 모정 동반자살하다.” B신문 “사회가 모녀를 벼랑으로 몰았다.” 같은 사건인데도 두 신문이 바라보는 시각은 상반된다. 당신은 어떤 신문사가 사건을 더 정확히 반영했다고 생각하는가? A가 사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생활고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카드 사용 내역에 사치품이 들어갔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반면 B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어쨌거나 생활고에 처했다는 것은 사회적 구호의 기회가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욕할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보 정당들이 서민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욕먹고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어떤 정당이 자신을 대변하는지 모르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공산주의의 상징색인 빨간색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실제로 헌법에서 공산당을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아무도 빨간색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빨간색이 남는다고 해도 정치 성향이 분명하지 않은 정당 혹은 실제로 진보적인 정당은 반감이 큰 빨간색을 당색으로 사용하기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빨간색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보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극우 정당이나 우파 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색깔이 되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극우는 빨간색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가난한 사람은 길거리표 옷을 입는 것에 민감하지만, 부유한 사람은 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대중은 미디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미디어는 정보를 얻는 수단을 넘어 준거의 틀로 작용한다.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데 신중하지 않은 대중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토대로 선호 정당을 결정한다. 미디어에 나타나는 정치인의 외모, 편집된 말, 전문가의 평가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신뢰한다.

민주주의 초기에 자유와 평등을 강조했던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보통선거권을 두려워해서 자본가는 4표, 노동자는 1표의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에 의해 사회가 필연적으로 공산화되리라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1인 1투표제가 시행되는 한국은 공산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오랜 시간을 보수 정당이 집권해오고 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을 본다면 밀은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그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상상하지 못했다. 대중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무관심해서 자신의 이익과 권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귀찮아한다. 미디어는 그 틈으로 파고들어 대중이 봐야 할 곳을 친절하고 세련되게 가르쳐준다.

 

현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는 것, 정치적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나 비정치적인 성향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보수적인 세계관이다. 날카로운 풍자와 시사가 배제된 예능은 대중의 말초적 재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정치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측과 노조 중에 선하거나 도덕성을 담보한 집단은 없다. 상반된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두 집단의 목표는 일치한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측의 최대 목표는 회사의 이익이고, 노조의 최대 목표는 사원의 이익이다. 노사의 문제는 단순히 누구의 이익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군과 종교를 보수로 묶음으로써,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집단이 공존가능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군과 종교는 공존하기 어려운, 근원적인 측면에서 너무나도 다른 집단이다. 군은 합법적으로 적에 대한 사살 행위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집단이고, 반면 종교는 살생과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에는 부대마다 종교 시설이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신앙이라는 이상과 적과의 대립이라는 현실의 괴리가 이런 부자연스러운 현상을 만든 것뿐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와 군이 공유하는 공통적인 성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공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종교와 군이 공유하는 공통분모는 그들이 보수적 성향을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 기득권과 자본가의 재산을 보호하고 해당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군은 이해를 같이한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답부터 말하면, 독재주의와 엘리트주의다.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그것은 앞서 논의한 대로, 자본주의다. 민주주의, 독재주의, 엘리트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무슨 주의가 이리도 많은가? 차근차근 구분해보자.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정치체제에서 대립되는 개념이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체제에서 대립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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