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범죄 미국 162분
개봉 2025.10.01.






<One Battle After Another (2025)>은 격렬한 외부 갈등 대신, 관계 속에서 조용히 깎여 나가는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드라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인물 사이의 감정적 거리, 그리고 그 거리가 만들어내는 상처의 파동이다. 주인공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상처받을까 두려워 관계를 밀어내기도 한다. 이 모순된 움직임은 단순한 성격 문제나 상황적 반응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과 반복된 상처가 남겨놓은 균열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바로 그 균열의 표면을 천천히 어루만지듯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대사나 사건의 힘으로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면은 조용하고, 인물의 행동은 크지 않으며, 감정의 언어는 종종 생략된다. 하지만 그 생략 속에서 더 많은 것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는 눈의 떨림, 말 끝에서 길게 머무는 공기, 그리고 말하지 못한 채 삼켜지는 문장들이 인물의 내면을 훨씬 선명하게 드러낸다. 관객은 인물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말하지 못한 것의 무게를 듣게 된다. 이 점에서 작품은 상당히 섬세하고, 감정의 온도를 정확히 조절하고 있다.
관계 속 상처는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사랑하거나 가까워질수록 상처의 가능성 역시 커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것을 단순한 감정적 고통으로 그리지 않고,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동시에 타인에게 다가가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여정으로 다룬다. 주인공은 자신을 닫아버리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선택은 결국 자신을 더 고립시키는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작은 전투를 반복한다. 한 걸음 다가갔다가, 다시 한 걸음 물러나는 싸움. 이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One Battle After Another'는 바로 그런 매일의 감정적 전투다.
나는 이 작품을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보았다. 상영 후 이어진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 영상은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한층 더 깊게 확장시켰다. 그는 이 영화가 말하는 '반복되는 싸움'이 단순한 고통의 순환이 아니라, 인간이 계속해서 자신을 확인하고 갱신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상처가 남고 관계가 흔들리더라도,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는지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해설은 영화의 여백을 채우기보다는, 그 여백이 지닌 울림을 더 오래 머무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영화의 감정이 조용히 가라앉은 뒤에 찾아오는 사유의 시간을 길게 이어준 해설이었다.
한편, 이번 관람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 상영관은 10월 29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영화와 책, 그리고 기록의 공간이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작품을 보고 나와 로비를 지나면서, 이곳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영화의 여운과 겹쳐졌다. 관계와 기억,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던 작품의 내용이 이 공간의 마지막 순간과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어떤 공간은 단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One Battle After Another (2025)>은 감정적으로 요란하지 않지만,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파고드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반복되는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상처가 사라지지 않아도, 여전히 누군가를 향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전투는 오늘도 이어질 수 있다고. 끝내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아마 계속해서 또 한 번, 또 한 번 마음을 내어놓을 것이다.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의 마지막 상영이라는 사실이, 영화의 여운을 더 길게 머물게 했다. 결국,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붙잡는 것은 마음의 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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