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혜진
미래의창
2019.12.06
페이지 280
ISBN 9788959896196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
누군가에게 진 마음의 빚을 늘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빚지게 한 그 사람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닐 때 어느 교수님이 인용했던 독일 학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례 문제를 풀 때 법적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동원해 결론에 도달한 후 그 결론이 정의의 관점에서 수긍할 만한 것인지를 검토할 때 그 학자는 “우리 할머니는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뭐라고 하실까?”라고 묻는다고 했다. 할머니로 대표되는 법률 문외한(하지만 건전한 상식을 가진 분)이 그 결론에 대해 “그건 옳다고 할 수 없어”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법적 사고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교수님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개념에만 너무 집착하여 포섭이 실질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행해지는 경우’에 그러한 일이 생긴다
그녀는 당시 내게 경찰이 채증이나 하려고 세금을 쓰는 거냐, 채증 자체가 불법 아니냐며 불평했다. 나는 채증이 불법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다섯 명이, 무려 다섯 명이나 그녀에게 “나는 당신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라고 한 셈이다. 5인의 위헌 의견은 법적으로 우아한 문장이라는 점만 다를 뿐, 그녀의 불평 내용과 똑같았다.
이 사건 집회는 평화적이었으므로 미신고 집회로 변하여 집회 주최자의 불법행위가 성립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할 필요성과 긴급성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 집회가 신고 범위를 벗어났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촬영의 필요성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집회 현장의 전체적 상황을 촬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 사건 촬영 행위는 여러 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근거리에서 집회참가자들의 얼굴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심리적 위축을 가하는 부당한 방법으로 집회를 종료시키기 위한 목적이 상당 부분 가미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그녀에게 과연 국가란 무엇이었을까. 정책을 잘못 입안해 시위하게 만들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무차별적으로 시위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무수한 SNS와 대조하며 단순 시위 참가자를 찾아내 기소하고, 한편으로는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면서 방어하게 하고, 대법원에서 새 법리가 나왔으니 무죄라고 하고, 채증이 위헌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반대 의견으로 당신 말도 일리가 있다며 위로하는, 이 모든 모순이 가능한 존재. 그게 바로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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